목포학연구소

낭만 가득한 항구의 도시, 목포

목포의땅이름

산정1동

작성일
2024-12-31
조회
32


◎산정1동


■연동언뚝
소위 정병조원뚝이라고 하여 1925년경 축조된 것으로 알려졌다. 철도 기관차사무소(기관고라고도 불리웠다) 뒤 산정동 1053-108(남광식육점) 앞에서 용당동의 진섬(지금의왕자산세차장-산정1동 1061-이 있고 수문이 있다)까지 쌓은 제방이다. 이 제방은 지금도 도로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이 제방은 인력으로 공사를 하였기 때문에 1948년 무렵 제방이 무너져 커다란 재난을 겪었다. 그러나 제방을 축조한 정병조씨가 복구할 능력이 없어 목포시에서 제방관리권을 인수하여 복구하였으나 지대가 낮아 주거지로 개발이 되지 못하고 영세민들이 많이 살았었다.


■연동뻘바탕
산정초등학교 앞 육교 남쪽과 유달중, 동부시장일대가 전부 갯펄이 굳어져 생긴 벌판이었다. 용당성당 앞길은 옛날 갯고랑이 있던 곳으로 지금은 복개된 하수로이다.


※연동(蓮洞)
1965년 남해개발지역의 간석지가 매립되고 주거지가 늘어나자 1966년 1월 1일 동제 변경에 따라 산정동의 일부를 나누어 연동이 되었다가 1997년 1월 1일 행정동 분합에 따라 산정1동에 다시 통합되었다.
연동이라는 지명은 지금의 산정초등학교 일대에 연방죽이 있어 그곳에 연이 많이 있어서 연동이라 하였다 한다.
연동은 그 이름이 쌍교촌, 연치동보다는 늦게 생겼으나 제법 오래된 지명으로 생각된다. 1910년도에 개편된 지방행정구역명칭을 보면 목포부내면의 13개동리 가운데 연동이 버젓이 나타나 있고 1918년 발행된 지도에도 연동이란 지명이 있다. 산정리가 1932년에 목포부에 편입되었으니 목포에서는 오히려 연동이 산정동보다 먼저 생긴 동인 것이다.
연동이란 지명을 낳게 한 연방죽은 호남철도를 부설하면서 일부가 메꾸어졌고 1933년 목포산정초등학교가 들어서면서 자취를 감추었다고 한다.


■연동육거리
연동육교에서 남쪽으로 100여미터 내려가면 여섯갈래로 나뉘어진 길이 있었다. 여기를 연동육거리라고 하였는데 지금은 새로운 도로가 생기면서 그 모습이 바뀌어 버렸다.


■광목간도로
이 도로는 처음에는 오거리에서 대성동을 지나 지금의 일신아파트 앞으로 뚫렸으나 나중에 호남동 앞(지금의 중앙초등학교 일대)가 매립되면서 산정초등학교 앞으로 뚫렸는데 철도배수지(지금의 종원하이츠)앞의 바위산을 넓혀서 연동건널목을 지나 호남약국앞을 지나 2호광장으로 곧게 뚫렸다.


■2호광장
산정1동과 산정2동에 걸쳐있는 광장으로 옛날에는 바닷물이 드나드는 수로가 있었고 주변에는 갈대가 자라고 있었던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