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의땅이름
북교동
작성일
2024-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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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교동
본래 무안군 부내면의 지역으로 개항이후 쌍교의 북쪽이 되어 북교동이라 하였으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남교동 일부지역을 병합확정하였고 1997년 1월1일 행정구역개편으로 죽교3동, 달성동을 병합하여 북교동이라 하였다.
■무안감리서(務安監理署)청사 자리
목포시 북교동 178-1, 현 신안군청자리이다.
1897년 목포개항으로 개항지내에서 외국 영사관과의 외교사무와 한동안 지방행정사무를 관장했던 관아이다. 청사는 처음에 목포진의 만호청을 수리하여 임시청사로 사용하다가 1899년 지금의 신안군청자리로 신축하여 이전하였다.
◎달성동
1866년 죽교4동이 달성동으로 바뀌었다.
죽교동이 1949년 동제 실시에 의하여 죽교1동, 2동, 3동, 4동, 5동으로 하였다가 1966년 동명변경에 의하여 죽교4동이 달성동으로 5동은 대반동으로 바뀌었다.
■쌍샘거리
지금의 북교동 천주교회 부근에 있었던 샘터거리다. 북교동에는 두 개의 샘이 있었는데 그 하나가 쌍샘이다. 북교동 천주교회 앞에서 유달산 일주도로로 나가는 길이 뚫려 흔적도 없어졌지만 개항전부터 민가가 있었던 것은 이런 우물 때문이었을 것이다. 현재 북교동 157-1이다.
■불난여학교 자리
목포시 북교동 131번지, 즉 불종대거리에서 북교동성당쪽이 아닌 왼편길을 올라가면 前 문재철씨댁 윗쪽에 목포공립보통학교(북교초등학교의 전신) 여자부가 있었는데 1927년 12월 화재로 교사가 타버려 폐교되고 여학교 학생들은 보통학교로 합병되었다. 그래서 그 자리를 「불난여학교 자리」라고 하였는데 그 자리는 그 후 개인이 매입하여 큰집을 지었으나 서울로 이사하면서 택지를 분할하여 크고 작은 주택들이 들어차서 지금은 옛 모습을 찾을 길이 없다.
■김장성 집터
지금의 북교동 성당 자리이다. (목포시 북교동 46번지)
김장성이란 호칭은 제6대 무안감리를 지냈던 초정 김성규가 무안감리로 부임하기 전에 장성군수로 있었던 연유로 김장성이라 부르게 된 것으로 추측된다. 김성규는 목포지방에서 손꼽히는 대지주로 북교동 성당이 들어서 잇는 방대한 지대에다 집을 짓고 살았다.
또 여기에는 「극작가 金祐鎭文學의 産室」비가 서 있다. 김우진은 김성규의 아들로 신문학의 선구적인 인물로서 「死의 讚美」를 불렀던 윤심덕과 한국으로 향하던 관부연락선에서 현해탄(玄海灘)으로 투신 정사하였다.
■넙박거리
넙바우가 있던 거리. 북교동 천주교회 정문에서 쌍새암거리로 넘어가는 곳에 있던 넓은 바위가 있었는데 길을 넓히면서 깨뜨려 없앴다.
■큰샘거리
쌍교장터 동남쪽에 있는 마을로 큰샘이 있어 큰샘거리라 했다.
■구름다리
마인계터 잔등을 넘어 북교동으로 가는 길, 앞산 밑 골짜기를 가로질러 건너는 육교가 있는데 여기를 죽동구름다리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