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의땅이름
유달동
작성일
2024-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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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달동
목포의 상징인 유달산의 동남쪽 아래 위치한 동으로 유달산 기슭과 목포항의 서남쪽 갯벌을 간척하여 각국거류지가 되었는데 1914년 산수통 2정목, 4정목, 1정목 일부를 병합하여 산수정(山手町)이라 하다가 광복후 왜식명칭을 개정할 때 유달동이라 하였다. 1949년 동제 실시에 의하여 유달동, 중앙동, 대의동이 병합하여 유달동이 되었다가 1997년 1월 1일 목포시 행정동 분합에 따라 유달동과 서산동 금화동 지역을 통합하여 유달동의 명칭을 승계하였다. 목포가 개항되면서 유달동은 각국 거류지의 중심지로 일본인의 거주지뿐 아니라 주요 업무지구였기 때문에 일제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사적289호인 목포시립도서관[구 일본영사관(1900년 건축, 현재 목포문화원], 동양척식주식회사 목포지점(1920. 6. 1), 이훈동 정원(일본인 농장주 內谷萬平의 가옥), 유달초등학교 강당 등이 있다.
■대의동
본디 목포부의 지역으로 목포항의 서남쪽 갯벌을 간척하여 각국거류지가 되었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무안통 1정목, 영사관통, 산수통 1정목과 3정목, 각 일부 지역을 병합하여 대화정(大和町) 1정목, 2정목, 3정목이라고 하다가 1948년 동명변경으로 대의동으로 고치고 1949년 유달동회의 관할이 되었다.
■중앙동
본디 목포부의 지역으로 목포항의 서남쪽 갯벌을 간척하여 각국거류지가 되었는데, 1914년 영사관통, 목포대, 본정통, 산수통의 각 일부지역을 병합하여 본정(本町) 1정목, 2정목, 3정목이라 하다가 1948년 4월 왜식동명변경에 따라 시가의 중심이 되므로 중앙동이라 하고, 1949년 동제실시에 의하여 유달동회의 관할이 되었다.
■서산동
본디 목포부의 지역으로 목포항의 서남쪽 갯벌을 간척하여 일인의 거류지가 되었는데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욱정(旭町)이라 하다가 1948년 왜식동명을 변경할때 목포의 서산 밑이 되므로 서산동이라 고치고, 1949년 동제실시에 의하여 서산동과 금화동을 병합하여 서산동회가 되었다.
■금화동
본디 목포부의 지역으로 목포항의 남쪽 갯벌을 간척하여 일인의 거류지가 되었는데 1914년 앵정(櫻町)이라 하다가 1948년 왜식동명변경으로 금화동으로 고치고 1949년 서산동의 관할이 되었다.
■국도1호선 기점
지금의 목포문화원(국가사적 289호, 전 목포시청, 목포시립도서관) 건물 아래쪽 어린이 놀이터에 도로 원표가 서있다. 도로원표에는 도로기점의 위치(동경 126°22′52″, 북위 34°47′01″)와 거리(국도1호선 목포~신의주 498km, 2호선 목포~부산 378km)와 “위치는 현 위치에서 남동쪽으로 22m 떨어진 목포시 대의동 구 우체국과 어린이 공원사이의 사거리 도로 중앙”이라고 새겨져 있고, 한편 “국도2호선의 기점은 1981. 12. 8 영산강 2단계 사업준공으로 당초지점인 목포시 대의동에서 목포시 석현동으로 변경됨”이라고 새겨져 있다. 또 한편으로 “국도1호선 거리는 판문점까지이며, 신의주까지 약 939km” 라고 새겨져 여기에도 남북분단의 쓰라린 현실을 실감케 한다.
■사꾸라 마찌(櫻町) 유곽
지금의 금화동(錦和洞)이다. 목포가 개항되면서 인구의 유입이 늘어나자 죽동에 유곽이 생겨 흥청거리다가 주거지가 확장되면서 1913년 사꾸라마찌(櫻町, 지금의 금화동)으로 옮겨졌다. 옛날의 모습은 다 없어졌으나 일제의 혹독한 식민정책으로 고생하던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치욕과 원한의 장소이기도 하다.
■러시아산, 욱산(旭山)
금화동 뒷산을 통칭 러시아 산이라 하였다. 목포가 개항되어 각국거류지가 획정되자 러시아가 영사관 기지로 금화동 일대를 사들였다. 여기에 영사관을 짓고 석탄저장고를 설치하여 러시아 군함의 기항지로 만들려고 하였다는 말이 있었으나, 러ㆍ일전쟁의 패망으로 일반에게 불하하였다. 이로 인하여 러시아산이라 불리어 졌고, 일본인들은 아침해가 가장 먼저 비치는 곳이라 하여 旭(아침해 욱)山이라 하기도 하였다.
■목포경찰서와 상무관
현 초원관광호텔 자리에 목포경찰서가 있었다. 1907년 한국의 경찰권을 빼앗아간 일제는 이 자리에 경찰서를 두고 남교동(지금의 원불교당 자리)의 무안경찰서에 분서를 두었다. 경찰서 마당 동북쪽으로 1926년 건평50평의 목조평가건 콘크리트 외벽의 유도도장을 지어 “상무관”이라 하였다.
■목포소방조
지금의 초원일식자리이다. 1910년 설치된 상설소방수대기소로서 소방수가 소방기구를 갖추고 밤낮 대기하던 곳이었다. 기구격납고는 뒷산을 뚫은 동굴이었고, 철골제 망루(불종대)가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