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학연구소

낭만 가득한 항구의 도시, 목포

목포의땅이름

충무동

작성일
2024-12-31
조회
38


▣충무동
1997년 1월 1일 행정동 분․합으로 인하여 온금동, 대반동, 충무동을 합하여 충무동이라 하였다.


■온금동(다순구미, 따순기미, 따신기미, 다순그미, 다순금)
온금동은 본래 무안군 부내면의 지역으로 목포시의 남서해안 유달산 기슭에 남향으로 자리한 아늑한 구미(바닷가나 강가에 물이 땅쪽으로 깊숙이 들어간 곳. 灣만. 후미)로 다순구미라 불리웠다. 순수한 우리 말인 다순구미가 언제부터 한자로 온금동(溫錦洞)으로 쓰여졌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897년 개항이후 일본이 작성한 「開港當時之木浦地圖」에 각국거류지의 경계에 온금동이 나타나 있는 것을 볼 때 이때부터 다순구미를 온금동으로 표기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특히 온금동은 연근해 어업이 한창이던 때에 한 고장사람들이 이 곳으로 이주해와서 동향촌(同鄕村)을 이루고 있었다는데 여러 고장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에 드물게 보는 경우이다.


■등산진(올뫼나루)
목포가 개항되기 전 무안군 이로촌면의 후미(해남 황원과 마주보는 나루)를 등산진이라 하였는데, 1924년 일제에 의하여 매립되어 조선내화공장이 설립되었다. 여기로 해서 뭍에 오르면 말태기를 넘어 죽동을 지나 양동, 대성동을 거쳐 용당동으로 해서 무안으로 가는 길이 있었다.


■말태기(마루터기. 온금동 말태기)
조선내화 공장 옆에서 유달 초등학교 뒤로 넘어가는 고개가 옛날의 올뫼나루의 길로 추정되며, 이 고개를 말태기, 온금동 말태기 고개라 한다.


■째보선창
다순구미를 매립하면서 제방을 곧 바로 쌓지 않고 ㄷ자형으로 꺽어 넣어서 어선 정박처를 만들었는데 바닷가안벽이 언청이처럼 안쪽으로 들어갔다 하여 째보선창이라 하였다. 이 째보선창은 1981년 제10회 전국소년체전이 광주와 목포에서 열렸는데 유달산 일주도로를 확장 정비하면서 일직선으로 매립하여 목포의 명물 째보선창도 없어졌다.


■산신당
온금동 뒷편 양지바른 산중턱에 산신당 터가 있다. 1978년 새마을 사업을 하면서 철거되어 터만 남아있다. 산신당에는 매년 정월 보름날 동네 제사(洞祭)를 지냈는데, 언제부터 동제를 지내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주 오랜 옛날(약 6백년 전)부터 지내왔다는 말이 전한다. 이 제사는 유달산 산신령을 모신다고 하며, 산신당의 벽에는 하얀 수염이 난 신선이 호랑이 등에 앉아있는 그림이 있었으며 풍어를 빌고 출어의 안전을 기원하였다 한다.


■온금동의 샘
동네 안에는 새 샘(동네앞에 새로 판 샘), 큰 샘(새샘 서남쪽에 있는 큰 샘), 짠물 샘(온금동 174번지에 있는 샘) 등이 있다. 이 밖에도 몇 군데의 샘이 있었는데 지금은 메꾸어져 없어졌다고 한다.
말태기 고개 중간쯤에 「幼學鄭麟浩施惠不忘碑」가 있는데 이 비석은 가뭄으로 오래도록 물이 말랐는데, 정인호씨가 헌금을 하여 우물을 파서 동네의 물걱정을 없게 하여 동네사람들이 비석을 세워 그 은혜를 기렸다 한다.


■구선창
온금동 동남쪽 바닷가에 있는 마을, 해안도로의 확장과 조선소 등 공장이 드러서면서 자취를 감추었으나 1970년대까지만 해도 대단히 큰 철제탱크가 있었고, 그 철제 탱크에는 삼학양조(주)에서 주정원료인 당밀을 수입해서 저장했었던 곳이다.


■제2수원지(玉の池, 龍淵), 제2수원예비지
1910년 지금의 목포제일여자고등학교 뒷편 유달산 자락에 저수지를 상동 제1수원지와 같이 축조하였는데, 1911년 제3예비 저수지를 제2수원지의 좌측 윗쪽에 증설하였다. 지금은 폐쇄되어 흔적만 남아있으나 당시는 일본인 거주지 구역의 중요한 급수원이었으며, 여기 저수지를 「玉の池」(다마노이께)라 하여 주변에 벗나무를 심어 유원지를 만들어 놓았다. 또한 왜정말엽 이 자리를 신사의 신축지로 사용하려고 저수지와 여과지, 배수지의 중요시설은 전부파괴 매몰하였는데 광복후 1955년 파괴되지 않았던 예비지를 복구하고 여과지와 배수지를 신설하여 “龍淵”이라 하여 이용하였으나 지금은 이용하지 않고 그 흔적만 남아있다. 상동에 있는 제1수원지를 축조 당시 일본인들이 용연(龍淵)이라고 불렀는데 이 수원지가 어떻게 용연이라 불리우게 되었는지는 알 길이 없다. 또한 이 수원지는 1984년까지 이용하였으나 인명사고가 자주 일어나서 1985년 5월 폐쇄하였다는 것이다.


■대반동(대만동, 유달산 너메)
대반동은 유달산 서쪽에 자리잡고 있는 곳으로 1949년 9월 동제 실시에 따라 죽교5구동으로 하였다가 1966년 동명변경에 의하여 대반동으로 바뀌었다. 대반동을 대만동이라고도 부르는데 신안비치호텔 뒤쪽으로 유달초등학교 뒷쪽에서 넘어오는 고개 쪽을 이렇게 부른다고 한다. 대만동에서 덕산마을까지를 산너메라고 하는데 시내와 떨어져 유달산 너머에 있는 마을이여 이렇게 부르고 있다는 것이다.


■소반동(나승대 골착)
대만동 서남쪽, 유달해수욕장의 뒷 쪽에 있는 마을이다. 조선시대 나승대란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역적 모의를 했다하여 쫓겨다니다 여기 소반동에 무엇인가를 묻어 두었다가 나중에 그것을 파갔는데 그 자리에 숯으로 뜬 자리가 있었다 한다. 그 사람이 역적모의로 쫓겨다니다 자기가 죽었다고 속이기 위해 자기 묘를 가묘로 하였다가 파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그런 까닭으로 이곳을 나승대 골짜기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용전동
목포해양대학 옆에 있는 마을이다. 일등봉에서 서남쪽 골짜기를 내려오는 곳에 있는 서북향의 마을이다.


■봉후동(최부자 골착)
어민동산 부근의 마을을 봉후동이라고 하고, 최부자 골착이라고도 한다. 봉후동은 유달산 이등봉의 뒷쪽이라고 해서 봉후동이라했으며 전라북도에서 내려온 최씨가 많은 땅을 개간하고 갯벌을 간척하여 부자로 살면서 이웃에게 많이 나누어주고 살아서 최부자 골착 또는 최부자 동네라 하였다 한다. 양지 바른 언덕에는 「崔公有權永世頌德碑」가 있는데, 恤孤救貧 賑衣貸食하여 人樂爲業 村賴安息(외로운 사람을 돌보고 가난을 구제하며, 마을이 평안하니, 사람들이 즐겁게 생업에 종사)하여 이 비를 세웠다고 새겨져 있다.


■덕산마을
소새산(小沙坪) 남쪽 기슭에 있는 마을이다.


■소새산(小沙坪) 목가이
유달산 이등봉 줄기가 서북쪽으로 뻗어 바다로 들어가기 전 조그만 봉우리(해발77m)를 이룬 산이다.


■목끝, 목개
소새산이 바다로 들어가기 직전에 생긴 곶이다. 봉후동의 서북쪽이고 덕산마을의 서쪽에 있는 곶으로 그 북쪽에는 호남창고가 있다. 목끝의 앞에 있는 개를 목개라고 하는데 목포주변에는 여러 곳의 목개가 있다.


▣충무동
1962년 11월 21일 법률 1775호 시ㆍ군ㆍ관할구역 변경에 관한 법률에 의하여 1963년 1월 1일 무안군 이로면 달리, 눌도리 등 13개 도서가 목포시로 편입되어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수군진을 기념하여 충무동이라 하였다.


■달리(달동, 달리도, 月島)
본래 지도군 압해면의 지역으로서 달리도 또는 달동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고하도, 허사도, 외달도, 노하도를 병합하여 달리라 해서 무안군 이로면에 편입되었다가 1963년 목포시에 편입되어 충무동으로 되었다.
달리도에는 원달1, 2리 동명, 도촌, 노두, 어망 등 6개의 자연마을이 설촌되어 있고 섬의 남쪽으로 금성산(128m), 서쪽으로는 사재산(사자산)이 있으며 남쪽과 북동쪽으로 제방을 쌓아 염전으로 이용하였다. 달리도는 충무동의 유인도 6개 가운데 면적으로나 인구수가 가장 많고 큰 섬이다. 또한 목포항의 방파제 역할을 하는 섬이기도 하다.


■외달도(밭달이), 멍더기, 外月島
달리도 서쪽에 있는 섬으로 달리도의 바깥쪽(밖앗쪽)에 있다하여 “밭달이”라고 하였다는데 한자로 고쳐 쓰면서 외달도(外達島)로 쓰고 있다. 1911년 일제가 발행한 지도에는 月島, 外月島(밭달이섬)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순수한 우리말로 달이, 밭달이였든 것을 이렇게 적다가 발음나는대로 達里島外達島 등으로 표기한 것 같은데 그렇게 바뀐 시기는 언제인지 확실치 않으며 달리, 밭달이로 부르게 된 연유도 알 수 없다.


■고하도(高下島, 孤霞島, 寶和島) 칼섬
달리 동쪽에 있는 목포시의 남해안과 마주보고 있는 섬이다. 이곳에는 1597년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진을 쳤던 흔적과 공의 공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진 모충각이 있으며 일제에 의하여 육지면의 시험재배에 성공한 곳이기도 하다.
또한 목포와 마주하고 있는 섬의 지형이 용의 형상을 하고 있다하여 용머리 또는 병풍처럼 펼쳐있다하여 병풍바위, 병풍도라고 불리우기도 하여 순수한 우리말로 칼섬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러ㆍ일의 고하도 토지 침탈
이 사건은 개항초기 일본의 조선 내 토지침탈의 대표적 사건이다. 뿐만 아니라 러․일 양국세력이 서로 맞서서 격렬하게 이권을 추구했던 사건이기도 하다. 러시아는 육군 부령이 군함을 앞세우고 매입한 토지의 지계(地契)발급을 감리에게 요청했고 일본인은 군대의 기밀비를 투입하여 조선인 고관을 앞세워 토지를 매입한 뒤 일본과 영구차용계약(永久借用契約)을 체결하여 고하도 전토의 대부분을 침탈하였다.


■노속도(老束島) 노랑섬, 老東島
고하도 남쪽에 있는 섬으로 노속도(老束島), 노하(瑙下)섬으로 불리웠으나 언제부터인가 묶을 속(束)자가 동녘 동(東)자로 바뀌어 지도에는 노동도로 표기되어 있으나 여전히 노속도로 부르고 있다.


■고하리
고하도 안쪽에 있는 마을.


■성안골(큰 덕골)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고하도에 주둔했을 때 축성했던 성의 안쪽에 있는 골짜기를 성안골, 큰덕골이라 한다. 골짜기 남쪽으로 큰 덕골 저수지가 있고 그 앞쪽 논이 충무공이 전선을 건조했다는 조선소 자리로 일제시대에 갯벌에 묻혀있던 나무토막을 파낸적이 있었다고 한다.


■소두루지
고하도 옛조선소 자리가 있었던 구미를 소두루지라 했다.


■큰산
고하리 북쪽에 있는 해발 62m의 산이다. 큰산과 큰산의 북쪽에 있는 말바위의 남쪽으로 성을 쌓았었다.


■북산
고하도 병풍바위 중간에 있는 해발 55m의 산


■병풍바위와 용머리
고하도 큰산에서 서북쪽 해안을 따라 형성되어 있는 절벽을 병풍처럼 생겼다하여 병풍바위라 하고 병풍바위 끝자락을 용머리라 하며 목포 팔경중의 하나인 「용두귀범(龍頭歸帆)」의 바로 그 용머리이다.


■선덕바우
고하도 공생재활원 서북쪽 바닷가에 있는 바위


■큰목
서산초등학교 충무분교 서남쪽 장구도의 북쪽에 있는 곶을 큰목이라 한다.


■작은목
고하리 남동쪽에 있는 작은 만을 말하며 작은목 앞에 있는 개를 작은 목개라고 한다.


■절멩이
고하리 북쪽 끝에 있는 등성이로 절멩이 북쪽 끝에 있는 곶을 절멩이끝이라고 한다.


■초분골과 옥돌산
고하도 서산초교 충무분교 뒷쪽산을 옥돌산이라 하고 충무초교 남쪽 골짜기를 초분골이라 하는데 옛날에 초분을 했던 곳이라 한다.


■뒤도랑
고하도 모충각 북쪽의 고하도 교회가 있는 곳으로 탕건바위를 찾아가는 길목이기도 하다.


■멍섬(등대섬)
목포등대가 있는 섬. 고하도와 영암군 삼호면 용당리 사이에 있으며 옛날에는 멍섬이라고 불렀으며 한자로는 몽하도라고 썼다. 이 섬에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목포의 상징새인 학의 모양으로 만들어진 등대가 있다.


■장구도(장가섬, 장구섬) 장구도(長九島)
고하도 큰목 서남쪽에 있는 섬. 장구처럼 생겨서 장구섬이라 하였다한다.
썰물때에는 고하도와 연결된다.


■달리(큰말, 달동)
달리섬 선착장에서 서남쪽에 있는 마을로 1, 2구로 나누어져 있다.


■도촌
달리섬 선착장 서쪽에 있는 마을, 노두건네(노두동) 서남쪽에 있다.


■동명동(옹굿골)
달리섬 노두건네 마을 동남쪽에 있는 마을


■노두동(노두건네)
달리섬 선착장 서북쪽에 있는 마을. 옛날에는 노두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는 “감투골” 이라고 불리는 구미였는데 1960년경 제방을 축조하여 농경지로 이용하고 있다. ‘노두’라는 지명은 바닷물을 건너기위해 돌다리(징검다리)를 놓아 주민들이 왕래하였기 때문에 불리워진 이름이라 한다.


■어망촌
달리 북부제방의 서북쪽에 있는 마을로 마을 북쪽으로 어망자리라는 곶이 있고 동쪽으로 소두량도라는 섬이 있다.


■쪽박섬(쪽박끝)
동명동 마을의 동북쪽으로 쪽박처럼 돌출된 곶으로 섬이 아닌데도 섬으로 불리우고 있는데 섬으로 들어가는 길목이 좁아서 섬으로 불리우는 것이 아닌가 한다는 것이다.


■지픈골
감투골 서쪽의 조그마한 구미가 형성된 골짜기 개펄지역으로 1995년 국립해양유물전시관에서 매몰된 고대전통 한선을 발굴, 인양한 곳이다.


■개축골
달리 서남쪽 즉 금성산의 서쪽 골자기


■땅기미(땅그미)
달리도 절재잔등 서북쪽, 지픈골 서쪽에 있는 후미


■다랑가지
달리도 남쪽 끝에 있는 곶


■금성산
달리도 남쪽에 있는 해발 128m의 산


■사재산(사자산) 사치산(寺峙山)
달리도 서쪽에 있는 해발 137m의 산


■쭉끝
달리염전 동남쪽으로 쭉 뻗은 곶


■소두량도(소두랑섬小斗量島)
달리도 북부제방 선착장앞에 있는 무인도


■수퉁머리
밭다리해수욕장 동쪽 끝에 있는 곶


■진여끝
외달도 서남쪽 끝에 돌출된 곶


■솔머리끝
외달도 동남쪽 끝에 있는 곶


■밭다리 해수욕장
외달도의 북쪽 수퉁머리 서쪽에 있다.


■별섬(別島)(딴 멍더기, 별도섬)
멍더기 북쪽에 있는 외딴 섬


■허사도(허새도, 허새)
장구섬 서남쪽에 있는 섬. 목포신외항 건설부지로 영암군 삼호면 가지도(可之島)에서 구와도(拘臥島)를 거쳐 허사도와 연도교가 가설되어 있다.


■분티끝
허사도 남쪽 끝의 곶. 가지도의 축성암과 마주하고 있는 곳이다.


■새미끝
허사도 서쪽 끝의 곶


■눌도동(訥島洞)
본래 지도군 압해면의 지역으로서 눌도, 육도, 율도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장자도를 병합하여 눌도리 라고 해서 무안군 압해면에 편입되었다가 1963년 1월 1일 목포시에 편입되어 1966년 1월 1일 충무동의 관할이 되었다.


■맥도(보리섬)
노금이 동남쪽에 있는 섬


■우도(牛島, 소섬)
눌도와 장자도 사이에 있는 섬


■장좌도(長佐島, 장자도, 장도섬)
눌도 동남쪽에 있는 섬


■노구미(노금이)
눌도 서남쪽에 있는 후미, 눌도 선착장 서쪽의 후미이다.


■고분도끝(곱은등, 곱은 데)
눌도리 동쪽에 곱은 등성이


■금수동
눌도 북동쪽에 있는 마을


■양지몰
눌도 서북쪽에 있는 마을


■양지머리
눌도 북부제방의 서남쪽에 있는 산


■금수노리
금수동 북동쪽에 있는 곶


■굴바위
눌도 북쪽 끝에 있는 바위


■떡바위(똑바우, 독바우, 석암)
눌도의 큰산(눌도봉) 동북쪽에 있는 큰 바위


■큰산(큰봉, 눌도봉)
마음산 동북쪽에 있는 해발 104m의 산, 눌도에서 으뜸이다.


■마음산(馬飮山)
눌도 서북쪽에 있는 산


■먹바우(미역바우)
눌도 서북쪽 바다에 있는 바위


■뻘등샘
눌도 동쪽 갯벌에 있는 샘


■큰 새앰
눌도 복판에 있는 큰 우물


■쇠똥재
눌도 동북쪽에 있는 고개


■누에머리(뉘머리, 네머리)
장좌도의 북쪽 등성이


■돌메
장자 서남쪽 산모통이쪽에 있는 들


■뙤기머리
장좌도의 남쪽 등성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