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학연구소

낭만 가득한 항구의 도시, 목포

목포의땅이름

삼향동

작성일
2024-12-31
조회
74


▣삼향동
1897년 1월 1일 무안군 삼향면 대양리 옥암리가 목포로 편입되어 이로동 일부와 합하여 삼향동이 되었고, 1997년 1월 1일 행정동 분합에 의하여 삼향동이 삼향동, 옥암동, 부흥동으로 분동되었다.


■산계(山溪)
지적산 북쪽의 계곡, 산골마을이다. 조선조 말 새로 번성한 마을이라 해서 새터(新村)라고도 했다. 옛날에는 색주가와 난장판도 있었다한다. 근화희망타운 아파트의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산양(山陽)
대박산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저수지 안 동네로 대월리라고도 한다. 월산 마을에서 산양마을 계곡으로 떠오르는 달을 보면 달이 유난히 크게 보여 대월리라고 하였다 한다. 지금의 목포실업고등학교 부근이다.


■월산(月山)
본래 산계, 산양과 같은 마을이었으나, 마을이 구분되면서 생긴 이름이다. 바다의 원둑(월산방조제)을 막기 전에는 해목이라고도 했다 한다. 지금의 대양검문소 부근의 마을이다.


■노득동(路得洞)
목포실내체육관 북쪽 산넘어에 있는 마을이다. 실내체육관 뒤쪽 산은 몹시 험난한데 내화촌으로 가는 도로가 생기면서 새로운 길을 얻은 마을이라 하여 노득동이라 하였다 한다.


■내화촌(奈花村)
대박산 북서쪽 마을이다. 지나가던 스님이 “내화낙지(柰花落地)의 명당“이라고 한데서 마을이름이 유래되었다고도 하고, 벚나무가 많아서 내화촌이라 하였다 한다.


■대박산(大朴山)
삼향동 사무소 뒤쪽(북쪽)마을이다. 산골마을 초가지붕위에 열려있는 박이 크게 보여 대박산이란 이름이 붙은 것이라는 구전이 전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무안현조에는 「함박산(含朴山)在縣南六十里」라는 기록이 있는데, 유독 승달산, 유달산, 고림산과 함박산의 기록이 있으니 이 산이 역사적으로 어떤 연유가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드나 확인할 길이 없다.


■장자골(長子谷)
내화촌 앞의 바닷가 마을이다. 본래는 내화촌과 한 마을이었다. 지금은 마을 뒤쪽으로 1호국도 우회도로가 나있어 바닷가에서 멀어져있다


■석현(石峴)
석현 현대APT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독갓제의 고인돌이 언덕에서 굽어 본다고 해서 석현리라 했다 한다. 이곳이 초의대사(草衣大師)의 출생지라는 설이 있었으나 지금은 무안군 삼향면 왕산리에 생가를 복원하고 성역화 하였다. 지리적으로 여자가 성하는 지형이어서 아들들은 외지로 나가고 데릴사위들이 마을을 지킨다는 말이 전해지기도 한다.


■신지동(新芝洞)
임성리 역 앞, 임성초등학교가 있는 마을이다. 옛부터 지초(芝草)가 흔한 곳이었다 한다. 국립 목포병원쪽 마을을 신지 작은 마을이라 한다


■새바탕(쇠바탕)
월산 마을의 간선도로 쪽이다. 새터를 나쁘게 부를 때도 쓰였다


■지적동
석현 현대APT 부근의 마을이다. 지적산 남쪽 기슭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지적동이라 불리운다.


■다리방
산양저수지의 원둑이 있는 곳이다. 저수지가 생기기전에 계곡에 다리가 놓여있었다 한다.


■아랫상개
산계 마을의 아래쪽에 있는 마을이다


■돌매(돌뫼)
대박산 고갯길.


■알터
아랫 상개로부터 돌개쪽의 안 마을.


■낙수혈
낙수산, 돌매 오른편에 있는 마을, 낙수산 밑에 낙수혈이 있어 숭어가 많이 잡혔는데 숭어를 잡아서 판돈으로 둑을 쌓아 바다를 메워서, 들을 만들고 아랫 상개의 마을을 형성하였다 한다.


■솔갯재
산양저주지의 왼쪽 고개, 옛날 처형장이 있었던 곳이라 전하여온다. 소리개가 많이 떠도는 고개였다고 한다.


■중등
새터(산계)웃쪽, 중등머리언덕, 중등포, 월산 방조제가 생기기 전에는 여기까지 바다물이 들어와 포구였다 한다.


■쑥개바위
노득동 뒷산에 있는 바위, 쑤쿠개 바위라고도 한다


■산수재
노득동 입구의 고개, 구루마 잔등에서 왼쪽으로 노득동으로 들어가는 고개이다


■구루마잔등
대연초등학교 옆에서 실내체육관으로 넘어가는 고갯길을 말하다. 이 길을 원래 국도 1호선의 도로로서 예전에는 이 길로 무안으로 나갔다. 또한 내화촌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마부들이 살고 있었고 길이 가파라서 구루마(馬車 : 달구지)를 끌고 가는데 말이나 소도 힘들고 사람도 힘든 험한 고갯길이었다.


■무제봉
내화촌 뒷산의 봉우리로 기우제를 지냈던 곳이다. 다른 여러 명산에서 기우제를 지내도 비가 오지 않았으나 무제봉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이슬비라도 왔다 한다. 무제봉을 천제봉이라고도 한다


■천제봉 옹달샘
천제봉 밑에 조그마한 옹달샘이 있는데 아무리 가물어도 그 샘은 마르지 않았다고 한다. 천제봉에 기우제를 지내던 제관들이 목욕재계하고 치성을 드렸는데 최근에 석축을 허물고 브럭으로 깨끗이 쌓아 놓은 후로는 샘물이 말라 버렸다는 것이다


■독갓재
석현마을에서 신지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독(고인돌)이 길 가에 있는 고개라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짐작된다, 신지동재라고도 한다.


■갱굴(갱골)
석현마을 지적산 안쪽 골짜기로 노장골, 노정굴이라고도 한다.


■강장산
석현 안동네 뒷산. 석현마을에는 강씨가 맨먼저 와서 살았는데 어느 해 보리 흉년에 타지로 떠나고 장씨가 와서 살았다고 한다. 이래서 강장산이라는 이름이 생겼다는 것이다.


■참남재(참낢재)
석현 삼거리에서 목포보호관찰소를 지나 석현 마을로 가는 고갯길이다. 참나무숲이 우거져 참나무재라고 했다 한다.


■짱바탕
석현삼거리 삼학주유소가 있는 자리. 옛날에는 갯벌이 좋아 짱뚱이가 많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지사골
장자골 너머 바닷가를 지사골이라 했다.


■수문머리
장자골 뒷산, 1966년 내화촌 앞 제방을 축조하면서 이 산기슭에 수문이 생겨 수문머리라 했다 한다.


■와우영
내화촌에서 장자골로 가는 길목의 오른쪽 산마루, 암소가 드러 누워있는 형상의 지형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우등골
폐기물 처리시설을 설치하면서 없어진 내화제(저수지)의 안쪽 골짜기.


■안골
와우영 안쪽에 있는 골짜기로 폐기물 처리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초분골
지사골 너머의 골짜기, 옛날에는 초분이 있었던 골짜기라 한다.


■솔섬
장자골 마을 앞 들길 가운데 있던 섬


■방맹이섬, 부채섬, 꾸리섬
지사골 앞 바다에 있는 섬들로 국도 1호선 우회도로가 생기면서 그 흔적을 찾기가 어렵게 되었다.


■까치머리
솔섬이 노득동쪽으로 뻗었는데 지형이 까치머리처럼 생겼다 하여 이렇게 불리워진다.


■매봉
내화촌 마을 윗산쪽에 있는 산봉우리로 매처럼 생겼다하여 매봉이라고 부른다.


■옥녀봉
내화촌에서 노득동쪽으로 보이는 산봉우리로 옥녀가 바위에 앉아 거문고를 탄다고 하여 옥녀탄금(玉女彈琴)의 봉우리라 했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