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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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기에 목포에서 태어난 한국문학의 선구자 素影 박화성 선생은 개척자의 생애가 그러하듯, 외롭고 어려운 속에서도 끊임없는 도전과 정진으로 우리 문학사에 우뚝선 선구자요, 선각자였다. 남성위주의 사회에서 여성으로 15세에 소학교 선생으로 교단에 선 것을 비롯하여, 일본 여자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한 최초의 한국여성이었으며, 우리문단에 등장한 최초의 본격적인 여성 작가였고, 또한 장편소설을 집필한 최초의 여류작가로 줄곧 선구적 길을 걸었다. 또한 박화성 선생의 문학은 민족의 운명을 생각하면서 괴로움과 외로움을 일제(日帝)에 대한 저항의식으로 승화시켜 나갔는 점을 높이 평가할 수 있다.
우리나라 근대문학의 태동기인 1925년 문단에 등장한 이후 60여 년의 작가생활을 통해 한국문단 의 대모(大母)로 칭송 받으며 남긴 수많은 역작과 그의 족적은 우리가 지키고 기려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라고 평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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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및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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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 4월 16일(음) 박운서와 김운선의 막내딸로 목포에서 출생
1915. 목포 정명여학교 고등과 졸업
1918. 숙명여고보 졸업, 천안과 아산의 보통학교에서 교편 잡음
1922. 영광중학교 교사로 부임. 조운(曺雲) 등 文友들과 문학수업
1925. 단편 <추석전야>가 춘원 이광수의 추천으로 『조선문단』지에 게재되어 문단에 등단
1926. 숙명여고보 신학년제 4년졸업, 일본여자대학 영문학부 입학
1929. 동대학 영문학부 3년 수료, 단편 <하수도공사> 발표
1932. 한국여성 최초의 장편<백화>를 동아일보에 연재하고 단행본으로 간행
1933. 이후 중편 <비탈>, 장편 <북극의 여명>, 단편 <조혼> <고향없는 사람들> 등의 발표후 일제의 우리말 말살 정책에 항거하여 각필
1947. 첫 단편집 <고향없는 사람들> 간행
1955. <고개를 넘으면>(1955)을 시작으로 <사랑>(1956), <벼랑에 피는 꽃>(1957), <내일의 태양>(1958) 등 장편을 잇달아 발표하여 장편시대의 막을 열었음
1958. 목포시 문화상 수상
1960. <타오르는 별> <창공에 그리다> <태양은 날로 새롭다> 등의 장편을 연재
1961. 이화여자대학교 제정 문학선구 공로상 수상. 한국문인협회 이사 피임
1962. 장편<가시밭을 달리다> <너와나의 합창>발표
1963. 국제 P.E.M클럽 한국본부 중앙위원 피임 장편 <젊은 가로수>연재
1964. 회갑기념으로 <눈보라의 운하>간행
1965. 한국여류문인회 초대 회장에 선임, 자유중국 부인작가협회 초청으로 대만 방문
1966. 한국예술원 회원에 선임, 뉴욕에서 열린 국제 펜클럽 세계연차대회에 한국대표로 참가. 단편 <증언> 으로 제3회 한국문학상 수상
1968. 한국친화회(韓國親和會) 초청으로 일본에서 문학강연회 좌담회를 가짐. 제3단편집 <잔영(殘影)>발표
1970. 제15회 예술원상 수상
1974. 은관문화훈장(銀冠文化勳章) 포장, 고희 기념으로 수상집 <순간에서 영원사이>간행
1977. 제4단편집<휴화산> 간행
1984. 제24회 3·1 문화상 수상 이후 <마지막 편지> <달리는 아침에> 등 단편을 발표, 마지막 임종 직전까지 집필
1988. 1월 30일 상오 6시 永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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