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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길

이훈동 정원

작성일
2024-12-31
조회
31
이훈동 정원


분 류: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65호

지정명칭: 이훈동 정원

소 재 지: 목포시 유달동 4-1

지정면적: 3,300m²

지정년도: 1988년 3월 16일

 



이훈동 정원은 유달산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데 구 일본영사관(현 목포근대역사관1관)에서 걸어서 채 5분이 안 되는 위치에 조성되어 있다. 원래는 1930년대에 일본인 우찌다니 만빼이가 조영(造營)했던 것으로 해방이후 해남출신 국회의원 박기배의 소유가 되었다가 1950년대에 이르러 이훈동의 소유가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에서는 일제강점기 목포에 조성되었던 저택과 정원의 옛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저택의 경우 내부는 한국적 거실과 서양식 응접실로 개조되었지만 외형은 일본식을 잘 유지하고 있고, 정원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개보수를 거듭하여 현재 입구부분과 앞뜰 부분 변형되었지만 상당부분이 원형그대로 유지되고 있어 조경문화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정원은 입구정원, 안뜰정원, 임천(林泉)정원, 후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입구정원의 정문에서 현관에 이르는 통로는 직선으로 중앙선을 긋고 양편에 네모의 백색부분과 네모의 자갈깔이 부분을 엇바꿔 배치한 콘크리트 포장이며 그 양편을 꽝광나무로 갓돌림하고 안쪽의 공간에다 향나무, 종려, 모과나무, 배롱나무 등을 심었으며, 현관 바로 앞에 일본식 춘일형 석등을 배치하였다. 안뜰정원은 잔디마당을 바탕으로 하고 후박나무와 후피향나무, 종가시나무 등이 심어져 있고, 서쪽의 임천원에는 삼나무, 편백나무, 화백, 종가시, 위성류, 다매화 등을 빈틈없이 심었고 수림속에 좁다란 시냇물이 흐르도록 만들어 놓았다. 후원은 언덕 위의 판판한 잔디마당(동서 30M, 남북 8m)을 중심으로 하여 그 윗편과 아랫편의 비탈면에 갖가지 나무를 심었다.


호남지방에서는 가장 큰 규모로 알려진 이정원은 나무의 종류도 113여종에 이르기 때문에 난대지방(暖帶地方) 식물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주목되고 있다. 총 113종(한국야생종37, 일본원산종39, 중국원산종25, 기타12종) 이상의 많은 수종(樹種) 중 순 외래수종이 76종이며, 이중에서 상록수가 모두 69종으로 전체의 61%를 차지하고 있다. 그루수로 보면 일본종이 가장 많다.


이 밖에 일본식 석등(石燈)의 기본형인 춘일형(春日形)·원주형(遠州形)직부형(織部形)·설견형(雪見形)의 석등과 오중탑(五重塔)·칠층탑(七層塔)이 있고 또 일본식다원정(茶園庭)에 있어서의 필수 요소인 「연못분수」도 배치되어 있다.

정원을 구성하는데는 식물뿐만 아니라. 인공으로 조성된 연못과 석조물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일본인의 조경문화가 지니는 한 특색을 살펴볼 수 있다.


다른 역사의 길 답사 장소에 비해 이곳은 잠시 긴장된 마음을 늦추고 아름답게 조성된 주변환경을 감상하면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그 덕분에 각종 드라마의 촬영장소나 신혼부부들이 웨딩사진을 찍는 곳으로 유명세를 탔다.



의의:

일제강점기가 끝난 후 일본인과 관련된 많은 유산들이 무분별하게 훼손되거나 철거되었으나, 이 정원은 해방이후 50년이 지나는 동안 이훈동의 독창적 수목관리와 시설규모확장을 통해서 지금에 와서는 더욱 발전된 모습의 정원으로 변화였다.

특히 다양한 식물 내용 때문에 교육적 연구자료로써 가치 있는 자원이 되고 있는데, 정원수 중에 국내에서는 단 하나뿐인 흑사리 나무를 비롯하여, 일본의 화산 폭발때 목포까지 날아온 씨가 떨어져 자생했을 것이라는 일화를 가지고 있는 암수 한쌍(현관 앞)의 향나무 등이 주목을 받고 있다.



참고자료: 《문화재도록》, 문화재청

《유달산》, 목포문화원

《목포시의 문화유적》, 목포대학교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