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길
이충무공 고하도 유허비(모충각)
작성일
2024-12-31
조회
73
고하도 유허비
분 류: 지방유형문화재 제39호
명 칭: 이충무공고하도유허비(李忠武公高下島遺墟碑)
소 재 지: 목포시 충무동 산 230번지
건립시기: 1722년(경종 2)
지정년도: 1974년 9월 24일

유허비는 고하도 옛 선착장에서 약 200m 떨어진 당산(堂山)에 위치한다. 1597년 충무공이 고하도에 진성(鎭城)을 축성하고 군사를 주둔하였다가 1598년 군사들을 이끌고 완도 고금도진으로 옮겨감에 따라 고하도진에는 별장(別將)이 배치되었는데, 그후 1647년(인조 25년) 고하도진이 당곶(목포시 하당일대)으로 이진(移鎭)됨에 따라 폐진되었다. 1722년(경종 2년)에 이르러 충무공의 업적을 후인들에게 보전하기 위해 당시 통제사로 부임한 오중주(吳重周)와 충무공의 5대손 이봉상(李鳳祥)이 유허지에 비 1기를 세워 현존하고 있다.
유허비는 일제시대 때 야산에 버려져 있었던 것을 해방이 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1949년에 비각을 건립하였으며, 1963년 1차 중수, 1974년 9월 24일 지방유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비명은〈有明朝鮮國故三道統制使贈左議政忠武公高下島遺墟記事碑〉라 이름하고, 남구만(1692∼1711)이 비문의 찬(撰)하였으며, 조태구(1660∼1723)가 서(書)하고, 이광좌(1674∼1740)가 비문을 새겼다. 비문은 17행 48자가 새겨져 있다. 주된 내용은 ① 정유란때 이충무공이 전진기지로 고하도를 설정하게 된 과정, ② 진이 근년(1647년, 인조25)에 당곶진(현 목포시 하당)으로 옮겨감에 따라 이충무공의 유허가 소실됨을 안타깝게 여기던 오중주통제사가 유허비 건립을 주도한 점, ③ 전쟁시 군량미의 중요성, ④ 후임 통제사로 하여금 고하도유지임을 알리기 위한 목적에서 이 비석을 세우게 되었다는 내용 등이다.
비문의 뒷면에는 〈崇禎紀元後九十五年壬寅 八月〉이라 기재되어 있어, 비석의 건립년대가 정확히 밝혀진다. 비석의 크기는 ① 비수(碑首): 높이 80㎝, 폭 153㎝, 두께 58㎝, ② 비신(碑身): 높이 227㎝, 폭 112㎝, 두께 36㎝, ③ 비좌(碑座): 높이 103㎝, 폭 165㎝ 등이다. 비석의 재질은 화강암이며 비면에는 일제시대 때 부분적으로 손실된 흔적이 남아 있고, 상층에는 당초문이 새겨진 이수를 갖추었다. 유허비각인 모충각의 내부에 유허비가 있고, 후인들에 의해 작성된 추모시가 42개의 현판으로 걸려있다.
분 류: 지방유형문화재 제39호
명 칭: 이충무공고하도유허비(李忠武公高下島遺墟碑)
소 재 지: 목포시 충무동 산 230번지
건립시기: 1722년(경종 2)
지정년도: 1974년 9월 24일

유허비는 고하도 옛 선착장에서 약 200m 떨어진 당산(堂山)에 위치한다. 1597년 충무공이 고하도에 진성(鎭城)을 축성하고 군사를 주둔하였다가 1598년 군사들을 이끌고 완도 고금도진으로 옮겨감에 따라 고하도진에는 별장(別將)이 배치되었는데, 그후 1647년(인조 25년) 고하도진이 당곶(목포시 하당일대)으로 이진(移鎭)됨에 따라 폐진되었다. 1722년(경종 2년)에 이르러 충무공의 업적을 후인들에게 보전하기 위해 당시 통제사로 부임한 오중주(吳重周)와 충무공의 5대손 이봉상(李鳳祥)이 유허지에 비 1기를 세워 현존하고 있다.
유허비는 일제시대 때 야산에 버려져 있었던 것을 해방이 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1949년에 비각을 건립하였으며, 1963년 1차 중수, 1974년 9월 24일 지방유형문화재 제39호로 지정되어 보존되고 있다.
비명은〈有明朝鮮國故三道統制使贈左議政忠武公高下島遺墟記事碑〉라 이름하고, 남구만(1692∼1711)이 비문의 찬(撰)하였으며, 조태구(1660∼1723)가 서(書)하고, 이광좌(1674∼1740)가 비문을 새겼다. 비문은 17행 48자가 새겨져 있다. 주된 내용은 ① 정유란때 이충무공이 전진기지로 고하도를 설정하게 된 과정, ② 진이 근년(1647년, 인조25)에 당곶진(현 목포시 하당)으로 옮겨감에 따라 이충무공의 유허가 소실됨을 안타깝게 여기던 오중주통제사가 유허비 건립을 주도한 점, ③ 전쟁시 군량미의 중요성, ④ 후임 통제사로 하여금 고하도유지임을 알리기 위한 목적에서 이 비석을 세우게 되었다는 내용 등이다.
비문의 뒷면에는 〈崇禎紀元後九十五年壬寅 八月〉이라 기재되어 있어, 비석의 건립년대가 정확히 밝혀진다. 비석의 크기는 ① 비수(碑首): 높이 80㎝, 폭 153㎝, 두께 58㎝, ② 비신(碑身): 높이 227㎝, 폭 112㎝, 두께 36㎝, ③ 비좌(碑座): 높이 103㎝, 폭 165㎝ 등이다. 비석의 재질은 화강암이며 비면에는 일제시대 때 부분적으로 손실된 흔적이 남아 있고, 상층에는 당초문이 새겨진 이수를 갖추었다. 유허비각인 모충각의 내부에 유허비가 있고, 후인들에 의해 작성된 추모시가 42개의 현판으로 걸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