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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뫼나루 유감(有感)

[2005-02-19]

「올뫼나루」有感

오 홍 일(향토문화연구위원)

꽤 오래 전의 일이다. 필시, 목포진 복원의 필요성을 널리 알리고 또 그 공감대를 넓히기 위한 목적으로 목포문화원이 주관해서 이루어졌던 ‘목포, 만호진 학술 심포지엄’이 열리던 무렵임이 분명하니까, 1991년으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다.
당시에는 이 고장의 역사에 관심이 있는 분들 사이에서 목포라는 지명이 어디에서 연유했는가에 관한 논의가 분분했던 시절이다. 그래서 사람에 따라서는 이 고장에서 나무로 배를 많이 만들고 또 땔감으로도 많이 쓰인 나무에서 왔다는 이른바 수목설, 예로부터 이 고장이 면화의 고장이었던 데서 면화를 목화(木花)라 이르니 그 목화의 목(木)에서 왔다는 목화설, 목포의 땅 모양이 사람이나 짐승의 목처럼 생긴 지형에서 연유한다는 지형설, 분명히 어디라고 특정할 수는 없지만 영산강 상류의 어느 지점을 옛날에 목포라 불렀는데 그 지명이 저절로 이쪽으로 이동해 와서 목포가 되었다는 지명이동설, 거기에 하나 더해서 남포가 나무포와 음이 비슷하니 그 나무포의 ‘나무’를 한자로 고쳐 써서 목포가 되었다는, 얼른 듣기에는 그럴싸한 남포설 등 가히 백가쟁명(百家爭鳴)의 감이 없지 않았던 시절이다.
지금에 와서 따져보면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견강 부회도 분수가 있지, 참으로 근거도 없는 어처구니없는 담론들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런 맹랑한 내용들이 널리 알려진 근원은 일인들이라 하겠다. 그들이 써놓은 목포부사(木浦府史)에 그와 똑 같은 내용들이 고스란히 그대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 아마 일제강점기 자기네들이 우리를 지배하기 편하도록 우리의 자긍심(自矜心)을 없애고 정체성을 말살하는데 알맞은 그럴싸한 내용들이 망라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그렇다.
그런데 광복 후에 이것을 진지한 검토나 확인도 없이 금과옥조(金科玉條)처럼 곧이곧대로 믿고, 알 만한 이에 의해 자기가 수집하고 연구한 것처럼 공공기록에까지 기술해 놓았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낯뜨거운 일이라 하겠다.
하지만 역사 학도도 아니고 그 방면에 식견이 있는 것도 아닌 필자로서는 그 당시 아무래도 이상하다고는 생각하면서도 어떻다고 말할 계제는 아니었다. 따라서 이 고장에 관한 것이면 무엇이나 이곳저곳 손이 닿고 발이 미치는 데로 쫓아다니며 자료를 모아 읽고 따져보기만 했지 그 이상은 분수 밖의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루는 행여 좋은 자료나 얻을 수 있을까하고 문화원에를 들렸더니 당시 문화원에서 실무를 맡고 계시던 이로부터 오히려 하나의 엉뚱한 숙제를 받았다.
그것은 옛 문헌 자료에 의하면 목포는 달리 등산진(登山津)이라고도 하는데 그렇게 호칭한 연유가 어디에 있겠으며 한자어가 아닌 우리 토박이말 이름으로는 무엇이라고 했겠느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기를 이는 틀림없이 온금동 선창을 이르는 것일 거라고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위에서 말한 대로 목포라는 지명의 유래에 관한 주장들이 하도 여러 가지여서 헷갈리고 애매했던 상황에서 행여 여기에서라도 한 가닥 명쾌한 실마리를 찾아볼까 하는 고충에서 나온 것이었으리라 짐작된다. 하지만 숙제를 받은 입장에서도 그에 못지 않게 난감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문화원에 가면 웬만한 자료는 무료로 제공해 주는 데다가 때로는 당시로는 귀찮고 번거로웠던 자료의 복사까지도 마다하지 않고 해주는 데 대한 보답으로라도 가능하면 의미 있는 대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그러나 적어도 필자가 갖고 있거나 찾고 뒤진 자료의 범위 안에서는 오직 그 출전을 찾았을 뿐이지 그렇게 부르게 된 근거나 연유는 뒤웅박으로 바람 잡는 푼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것은 19세기 중엽 고산자 김정호(金正浩)가 편찬하여 1863년에 완성한 것으로 알려진 대동지지(大東地志)에 의하면 분명히, 무안의 진도(津渡) 조에는 〈등산나루는 달리 목포나루라고도 하는데 해남 황원의 우수영에 통한다(登山津 一云 木浦津 通于海南黃原右水營)〉라는 기록이 보인다. 그리고 그보다 앞선 1861년에 같은 이가 제작한 대동여지도를 보면 유달산 남쪽에 그려진 목포와 지금의 화원반도로 추정되는 곳과는 도로의 연결선이 그어지고 거기에 ‘등산(登山)’이라 표기한 것으로 보아 거기가 등신진인 목포와 해남쪽의 등산진임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당시 목포나루는 등산나루라고도 불린 것이 분명하다 하겠다.
그런데 등산진이란 명칭은 어디에서 연유한 것일까. 아무리 찾아도 문헌적 근거가 없으니 여러 궁리 끝에 생각다 못해 글자 그대로 나루에서 내리자마자 산길로 올라야 하는 나루이기에 그런 이름이 붙은 게 아니겠느냐는 말까지 해 봤지만 어디까지나 그것은 당시의 목포의 지형과 연관지어 상상력을 동원한 일종의 추리에 불과하고 아무런 근거도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다면 등산진의 순수한 토박이말 이름은 무엇일까. 이것도 역시 그 이상을 찾을 길이 없고 구전되어오는 말도 없으니 알 길이 막막했다. 단지 당시에도 해남 화원 방면으로 가려면 목포를 거치는 수밖에 없었겠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을 뿐이고 그 밖의 진척은 없었다.
그렇지만 이것도 상상력을 동원한 소설을 써보기로 했다. 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의 땅이름은 원래 토박이말 이름으로 불리다가 한자로 바뀐 이름이 대부분이다. 깟바우(갓바위)가 입암(笠岩)으로, 다순구미가 온금동으로, 나매기가 남악리로 된 것이 그런 예라 하겠다. 만약 이와 같은 경로를 밟아 된 ‘등산진’이라면 거꾸로 더듬어 가 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오를 등(登)을 나타내는 지금의 ‘오르다’는 우리 중세 국어에서는 ‘오다’이고 그의 어간(語幹)인 ‘오’는 ‘올’의 형태로도 나타난다. 따라서 한자 등(登)은 ‘오’가 줄어진 것이든 ‘올’ 그대로 이든 ‘올’로 써서 무리는 없을 것이다. 그러면 메 산(山)은 어떻게 봐야 할까. 역시 중세 국어 문헌에는 산은 ‘뫼’로 나온다. 그리고 나루 진(津)은 ‘’였으니 이를 옛 표기대로 적으면 ‘올뫼’ 쯤으로 적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되었다. 그러나 아래 ‘아’는 지금의 표기로 바꿔 적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등산진(登山津)은 ‘올뫼나라>올뫼나루’ 아니면 산(山)을 예스럽게 이르기를 ‘메’라고 하니 ‘올메나루’로 적고 읽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러면 그 위치는 어디일까. 그 후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지금의 온금동은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온금동이 남향인데다 유달산을 뒤로한 온화한 입지 조건을 가진 살기 좋은 곳임은 분명하다 하겠다. 그리고 여러 가지 전래 습속, 전래 유물, 구전 자료 등이나 인적 구성 등을 살필 때 목포에서는 상당히 오래된 마을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러나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온금동은 지난 시기에는 주로 도서지방 분들이 모여 산 어촌에다 논이 없어 밭농사만의 반농반어(半農半漁)생활로 생업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앞 갯벌이 수심이 낮은 간석지(干潟地)가 태반이어서 나룻배가 드나들 만한 입지적인 조건이 아니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렇게 볼 때 등산진이 온금동이었다고 보는 것은 무리라고 본다.
그렇다면 여러 상황을 종합할 때 등산진은 지금의 여객터미널을 중심으로한 곳이라고 볼 수밖에 없으리라 생각한다. 이에 관해서는 전에 다른 데서 언급했기에 여기서는 줄이기로 하거니와 그밖에는 그럴 만한 위치를 찾을 길이 없다.
그리고 덧붙여 말하고 싶은 바는 근간에 어느 기록에서 ‘올메나루’란 말이 오래 전부터 전통적으로 써온 목포의 다른 이름인 것처럼 기술되어 있는 것을 보았는데 이것은 부르기 쉽고 듣기 좋아서 쓴다면 모를까 위에서 밝힌 대로 등산진(登山津)의 토박이말을 찾다가 생각다 못해 만들어낸, 근간에 만들어진 말임을 분명히 밝혀두고 싶다. 2004. 11.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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