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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면 도둑 것으로 집이 생겼제

[2005-02-19]

목포사람 이야기


밤이믄 도둑것으로 집이 생겼제
-마당없는 집들의 마당 목포 77계단 -


김문선(전라도 닷컴 기자)


“77계단 아세요? 저짝으로 가봐.
목포시 동명동 77계단. 목포사람 어느 누구를 붙잡고 물어봐도 쉬 알려주는 곳이다. 77계단은 계단이 77개 있는 관광지가 아니다. 나지막한 언덕배기에 77계단 두고 마당 없는 집들이 따닥따닥 붙어 있는 삶의 공간이다.


배추 다듬고 마늘 까는 계단참


요 계단 앞뒤로 길이 확 터져놔서 바람이 얼마나 쎈지 몰라. 여름에는 징허니 시원하고 좋은디, 겨울에는 얼굴이 얼어불 정도제. 눈이라도 한 번 오면 여그 계단은 유리껍닥같치로 얼음이 깔려부러. 눈이 미끌미끌헌 쇠같치롬 되불제. 눈만 왔다 허면 못 돌아댕겨. 겨우 저짝으로나 양지가 좀 트인게 고쪽으로 혀서 벽 잡고 살살 나댕기제.
계단 중간 널찍한 공간을 마당으로 쓰고 있는 정공순(50)씨의 말이다.

이곳은 그에게 '문 열어 둔 마당'이다. 동네 아낙끼리 모여 앉아 배추를 다듬거나 마늘을 까는 것이야 늘상 있는 일. 계단에 놓은 고무 다라이에는 조금씩 이고 온 모래와 연탄재를 섞어 푸성귀를 키운다.

"원래는 마당이 있었어. 우리집도 요 옆으로 빙 둘러서 들어가는 마당이 있었제. 근디 마당이 있어봤자 불편해. 원체 햇볕이 없는디 지시락물(처마 끝에서 떨어지는 물)이 떨어지믄 그것이 다 이끼가 돼 불어. 그것이 불편한께 한두 집썩 마당을 없애고 계단에 문을 내기 시작헌 것이여."
이 곳 77계단 주민들에게는 마당 없는 집은 필요에 의한 선택이었던 것이다.


일제시대엔 신사(神社) 오르는 '성스러운 계단'


한때 동명동 일대는 목포시 최고의 번화가였다. 선창가로 오고 드는 배는 항상 만선이었고 나무 궤짝이나 얼음, 어구들을 사고 파는 사람들로 항상 북적였다. 80년도 초반 77계단의 부엌 하나 달린 방 한 칸 사글세가 100만원까지 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곳에 살기 위해 오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래 전부터 살고 있던 노인들이 전부고 1000만원에 집을 팔려고 내 놔도 거래가 안 된다.

77계단 마을자리의 원래 이름은 송도. 소나무가 많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송도는 목포 해안의 작은 섬이었다. 일제시대 일본인들이 송도 인근을 개간하고 1910년 이곳에 '송도신사(神社)'를 만들었다. 그 많던 소나무를 모두 베어 없앤 자리에 벚나무를 심고 섬 정상에 신사를 지었다. 지금의 77계단은 일제시대엔 신사로 오르는 '성스러운 계단' 이었던 셈이다.

"동산이었제. 일본 절 하나만 있었어. 절하고 관사 하나 하고 온통 사쿠라(벚꽃나무)가 만발을 했제. 저기 밑에 하고 위에 탑도 네 갠가 있었어. 20년 전만 해도 그 자리에 있었어. 누가 띠어가 팔아분 모양이여. 사자하고 말 모양이었는디."
이곳에서 해방 이후부터 내내 살았다는 김정준(71) 할아버지는 그 때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입학식이나 졸업식 때나 저 계단에 쭉 서서 사진을 찍었제. 게뚜리(다리를 감는 띠)를 하고 머리는 빡빡 밀고. 그때는 맘대로 오는 디가 아니여. 함부로 왔다가는 일본사람들한테 혼이 나거든. 인자 그때 흔적이라고는 가이당(계단의 일본말)밖에 없네."
당시 송도 신사 관리자는 일본 정부관리와 동등한 대우를 받았다.

"가물가물헌디, 여그 올라믄 목욕허고 새 옷 입고 와야 했어. 올 때만 77계단으로 올라오고 나갈 때는 샛길로 돌아댕겼제."
국민학교때 줄을 지어 송도신사로 참배를 다녔다는 노행심(70)할머니가 당시 입학식 때 77계단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한 이야기다.


신이 사는 곳에서 '사람의 마을'로


이 곳에 마을이 들어선 것은 해방 이후. 일본인들이 물러나면서 판잣집들이 하나 둘 지어지기 시작했다.
"해방이 되자마자 징용 갔다 온 사람들도 돌아오고, 시골에서도 올라오고, 밤만 되면 도둑것으로 하나씩 하나씩 집이 생겼제. 저그는 당꼬(물탱크)가 있는 자리여. 솔찬히 깊었는디 거기도 연탄재하고 쓰레기로 몇날 며칠을 메우갖고는 그 자리에 집이 두 채가 생기드만."
77계단 집 중 가장 높은 자리에 집을 짓고 사는 최영남(73)할아버지는 그 때 직접 집을 지은 사람 중 한 사람이다.

"인자 송도라고는 잘 안 불러. 그냥 동섬이라고 부르제. 해방 이후부터일 것이여. 여그가 왜 동섬이냐믄 동쪽에 있는 섬이어서 그랬다고도 허고, 거름 실은 똥배가 요 근처를 수시로 들락달락거렸거든. 그래서 똥섬이 동섬이 됐다는 말도 있고 그래."
송도 아래 파여 있는 방공호에서 화로를 만드는 주석일을 했다는 전선국(64)씨의 설명이다.

이제 원래 있던 소나무를 몰아내고 송도를 가득 메웠던 벚나무는 모두 베어 없어졌다. 신사 역시 평범한 가정집으로 변했고 참배를 강요당한 발길이 이어지던 송도신사는 사람이 사는 마을이 됐다. 함부로 오르지 못했던 '성스러운' 77계단도 푸성귀 화분 늘어서고 빨래가 널린 동네 마당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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