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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 칭: 구 호남은행(湖南銀行)
분 류: 등록문화재 제29호
문화재종별 : 근대문화유산 등록(2002년)
소 재 지: 전남 목포시 상락동 1가 10-2
건축년대: 1929년
건축규모 및 구조 : 2층 조적조
대지면적 : 1209.9㎡

건축 연면적 : 493.35㎡

 


  호남은행은 이 지역의 산업발전을 위해 1920년 10월 2일에 설립한 순수 민족자본은행이다. 당시 호남지방은 풍부한 농산물과 죽세공, 지물 등의 유명한 특산물을 산출하여 국내 보고라는 지칭을 받을 만큼 산업발전이 현저하였지만, 한편 이러한 산업자금의 수급과 금융을 원활하게 할 기관이 결핍되어 있었고 다만 조선은행과 조선식산은행 등이 있었으나 이러한 특수은행만으로는 보편적 금융을 기대하기는 곤란한 처지였다. 따라서 보통 상업은행의 필요성을 통감한 호남의 부호이며 유지인 현준호(玄俊鎬), 김상섭(金商燮), 김병로(金炳魯)등이 중심이 되어 본 은행을 설립하게 되었다. 자본금은 당시 돈150만원, 1주(株)에 50원, 제1회 주금불입완료(불입이 끝난 자본금 37만5천원)로 발족했으며 본점은 광주에 두었다.


  1933년 7월에는 동래은행(東萊銀行)을 흡수, 합병하게 됨으로써 영업지역을 경상남도지역으로까지 확대하고 아울러 동래·거창·영광·담양 등지에까지 지점을 설치하고 자본금을 200만원으로 늘려 대은행으로 발전하였다.


  일본은 1928년에 신은행령을 발포하고 민족계 금융기관에 대한 일본인 자본의 지배체제를 확립하기 위한 식민지금융정책을 강화하면서 민족계 은행의 통합을 강요하였다. 그러나 호남은행은 이같은 식민지 지배당국의 정책에 순응하지 않고 독자운영을 고수하다가 총독부가 일본인 자본의 참가를 거역하고 일본인을 직원으로 채용하지 않는다는 등의 이유를 들어 동일은행(東一銀行)과의 통합을 강요한 결과, 마침내 1942년 5월 1일에 합병 당하게 되었다. 그 후 1943년 10월 1일 본 은행은 조흥은행 목포지점으로 다시 출발하여 민족계 은행으로 그 계보를 이어 나갔다.


  결국 호남은행은 일본의 식민자본의 이식에 맞서 설립한 은행으로서 이 지역을 기반으로 한 지주자본과 상업자본을 산업자본으로 전환하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는 점과 순수 민족자본으로 설립함으로써 근대화의 자주적인 모습을 어느 정도 견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그 역사적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본 은행의 설립은 1920년이나, 본 건물은 1929년 11월에 건립되었다. 지금의 정문은 현대적 간판이 걸려 있지만 그 안은 예전에 음각된 '주식회사 조흥은행목포지점(株式會社 朝興銀行木浦支店)'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다. 그중 '조흥' 두 글자는 원래 '호남'이었던 것을 후에 바꾸어 놓은 것이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글자 중 '浦'자의 < ′> 1획이 누락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 사유에는 설립자 현준호 선생이 '일제로부터 우리가 독립하면 찍겠다.'라는 설과 '목포지점이 자리 잡고 번창하며 찍겠다.' 등의 여러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아직까지 그 1획은 빈 그대로 남아있다. 이러한 현준호도 중추원 참의로 있으면서 친일(親日)했다는 이유로 해방 후에 조사를 받게 되는데 중추원 참의는 본의 아니게 맡게 되었으며 오히려 호남은행에서 일본인을 쓰지 않아 미움을 사 합병된 것, 창씨개명을 하지 않은 것 등이 증명되어 불구속 처리되었다.


  본 은행은 구도심의 번화가인 오거리에서 선창가 쪽으로 100여m미터 되는 삼거리 모퉁이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본 건물 1동과 그 뒤로 연결된 부속건물이 있다.


  건물은 단순한 장방형의 2층 건물이며 외부는 약간 검은색 계열의 붉은색 타일로 마감되어 있다. 하단(기단부)은 1.1m 높이의 석조로 마감되어 있다. 현재 1층은 목포문화원 사무실, 강당, 원장실이 있고, 2층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1,2층 모두 변형되어 옛 모습은 볼 수 없다.


  정면 중앙과 양측 면에는 짧게 출입포치를 두었는데 특히 양측면 출입구만은 3단 모울딩한 화강석으로 처리하였다. 창문은 정면에 4개, 측면에 각각 3개의 수직창이 2층까지 설치되어 있는데, 안쪽으로 2단을 접어 건물의 입체감과 함께 수직성이 유난히 드러나 있다. 이로 인해 창문 사이의 벽면이 기둥처럼 보인다. 1,2층 사이의 외벽에는 장식의 방형 문양띠가 수평으로 둘러져 있고 지붕 바로 아래에는 2단의 Cornice가 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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